고흥 해상풍력·보성 기본소득·장흥 동물보호센터·강진 추경에서 확인한 공통의 질문 - “얼마를 썼나”보다 “무엇이 달라졌나”를 공개해야
고흥에서는 해상풍력과 수산업의 ‘상생’을 논의하고 있다.
보성에서는 농어촌 기본소득 지급 이후 12일 만에 63억원이 사용됐다.
장흥에서는 적정 수용능력 60마리인 동물보호센터에 158마리가 보호되고 있었던 사실이 정부 조사에서 확인됐다.
강진에서는 6,543억원 규모의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이 주요 재정 현안으로 등장했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네 지역의 뉴스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공통점이 있다.
행정이 주민에게 보여주는 숫자와 주민이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필요한 숫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회의를 몇 번 했는지, 얼마를 지급했는지, 얼마짜리 시설을 짓는지, 예산이 얼마로 늘어났는지만으로는 정책이 주민의 삶을 실제로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다산어보가 고흥·보성·장흥·강진의 최근 공개자료를 다시 살펴본 이유다.
고흥, ‘상생’이라는 말보다 어민의 손익계산서가 먼저다
고흥군은 지난 16일 수산발전 민관협의회를 열고 공공주도 해상풍력과 수산업의 상생방안을 논의했다. 군수와 부군수, 유관기관, 어업인 대표 등 30명이 참여했다.
군은 해상풍력단지 조성에 따른 어업구역 변화와 조업환경 영향을 살펴보고 수산업과 에너지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모델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필요한 논의다. 하지만 주민 입장에서 ‘상생’이라는 말만으로는 사업을 판단하기 어렵다.
풍력단지가 들어서면 기존 조업구역 가운데 얼마나 영향을 받는가. 영향을 받는 어선과 어업인은 몇 명인가. 어업소득 감소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반대로 해상풍력으로 발생하는 수익 가운데 고흥 주민과 어업인에게 돌아오는 몫은 얼마나 되는가.
현재 공개된 관련 기사에서는 총사업비와 발전용량, 예상 군 세입, 주민·어업인 이익공유액 등 구체적인 손익자료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
어업인 대표 30명이 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고흥 어민 전체의 이해가 반영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고흥 해상풍력의 성패를 평가하려면 결국 두 개의 숫자가 필요하다.
어민이 잃을 수 있는 것과 주민에게 돌아오는 것.
‘상생’은 그 두 숫자가 공개된 다음에 평가할 수 있다.
보성, 63억원을 썼다는 것과 63억원의 소비가 늘었다는 것은 다르다
보성에서는 농어촌 기본소득의 첫 소비 성적표가 나왔다.
8월 28일 첫 지급 이후 9월 8일까지 15만8,959건, 약 63억원이 사용됐다. 첫 지급액 124억4,560만원의 50.6%다.
군은 기본소득이 지역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분해야 할 숫자가 있다.
‘기본소득으로 사용한 돈’과 ‘기본소득 때문에 새롭게 증가한 소비’는 같은 숫자가 아니다.
주민은 기본소득이 없었어도 쌀을 사고, 기름을 넣고, 약을 사고, 식당을 이용한다. 이전에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결제했던 소비가 기본소득 카드 결제로 바뀌었다면 기본소득 사용액은 증가하지만 지역 전체 소비는 증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면지역 소비도 마찬가지다.
10개 면 주민은 사용지역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면지역 소비 증가에는 제도 설계 자체가 만든 효과도 포함된다. 따라서 면지역 사용비중 증가만으로 작은 농촌상권이 활성화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노동·미력·겸백·율어·복내·문덕·조성·득량·회천·웅치 등 각 면에서 실제 얼마가 소비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보성 기본소득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지난해 같은 달과 올해 소비액을 비교해야 한다.
월별 전입과 전출도 함께 봐야 한다.
기본소득 이후 실제 소비가 증가했는지, 사람이 더 들어왔는지, 들어온 사람이 계속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63억원은 기본소득의 성과가 아니라 성과를 검증하기 시작할 첫 번째 숫자에 가깝다.
장흥, 3억원 시설의 문제가 드러났는데 해법은 다시 40억원 시설인가
장흥에서는 더 직접적인 질문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광역자치단체의 현장조사 결과 장흥군 동물보호센터는 적정 수용능력이 60마리였지만 실제로는 158마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적정 규모의 2.6배가 넘는다.
암수나 공격성 등에 따른 분리수용 미흡과 법정 보호공고 누락도 확인됐다.
앞서 센터에서는 동물 사체 172구가 발견됐고 동물보호단체가 전 군수와 담당 공무원 등을 고발했다. 다만 고발은 수사와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으로 형사책임이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목할 부분은 시설의 역사다.
현재 시설 역시 2023년 당시 기존 시설의 노후화와 수용공간 부족을 해결한다며 3억원을 들여 새로 짓겠다고 발표했던 센터다.
그런데 몇 년 뒤 다시 심각한 과밀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는 이제 총사업비 40억원 규모의 신규 동물보호센터 건립을 지원할 계획이다.
더 큰 시설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3억원짜리 시설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40억원짜리 시설을 지으면 해결된다는 논리는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
60마리 규모 시설에 왜 158마리까지 들어오게 됐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최근 3년간 몇 마리가 입소했고 몇 마리가 주인에게 반환됐으며 몇 마리가 입양됐는지, 폐사와 안락사는 얼마나 발생했는지, 담당 직원과 수의인력은 몇 명이었는지 등을 함께 봐야 한다.
문제가 건물의 크기에 있었는지, 관리인력 부족에 있었는지, 입양·중성화 정책에 있었는지, 감독체계에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장흥에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40억원짜리 새 센터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보다 ‘기존 센터는 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는가’다.
강진, 6,543억원 추경보다 먼저 봐야 할 ‘사라진 예산’
강진에서는 돈의 다른 얼굴을 볼 필요가 있다.
강진군의회는 제323회 정례회에서 군정질문을 진행했고, 동시에 강진군이 제출한 6,543억원 규모의 제3회 추경안이 주요 재정 현안으로 다뤄지고 있다.
직전 추경보다 1,118억원 증가한 규모다.
강진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최우선으로 두고 세출 구조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주민에게 필요한 정보는 ‘6,543억원’이라는 전체 규모만이 아니다.
무엇을 줄여 그 돈을 만들었는가.
기본소득을 위해 기존 농업·복지·문화·지역개발·주민숙원사업 가운데 어떤 사업이 축소됐는지, 각각 얼마가 삭감됐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물론 기존 사업을 줄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효과가 낮은 사업이라면 과감하게 줄이고 새로운 정책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재정운용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왜 해당 사업을 줄였는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공개돼야 한다.
기본소득에 얼마를 투입했는지만큼 그 돈을 만들기 위해 포기하거나 연기한 사업이 무엇인지도 주민이 알아야 한다.
강진군의회의 역할도 질문 건수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군정질문에서 지적한 문제가 실제 추경 심의에서 삭감·증액·사업변경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의회의 성과는 질문의 숫자가 아니라 예산과 정책을 실제로 얼마나 바꿨는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 군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질문
고흥의 해상풍력과 보성의 기본소득, 장흥의 동물보호센터, 강진의 추가경정예산은 서로 다른 사업이다.
하지만 네 사례를 함께 놓으면 지역행정을 바라보는 하나의 문제가 드러난다.
행정은 주로 ‘투입의 숫자’와 ‘활동의 숫자’를 먼저 발표한다.
얼마를 투입했다, 몇 명이 참여했다, 얼마가 사용됐다, 시설을 몇 평 지었다, 회의를 몇 차례 열었다,
예산을 얼마 확보했다.
그러나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그 다음 숫자다.
고흥에서는 어민의 손실과 주민에게 돌아올 발전수익, 보성에서는 63억원 가운데 실제 증가한 소비와 면별 매출 변화, 장흥에서는 입소·입양·폐사와 적정 관리인력, 강진에서는 삭감된 사업과 그 금액이다.
이 숫자가 있어야 정책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다.
결국 지역행정을 감시하는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를 썼는가”에서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로.
“몇 명이 참여했는가”에서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부담했는가”로.
“무엇을 새로 지을 것인가”에서 “기존 것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가”로.
행정이 발표한 숫자가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고흥의 ‘상생’, 보성의 ‘63억원’, 장흥의 ‘40억원’, 강진의 ‘6,543억원’.
그 숫자 자체보다 숫자 뒤에서 실제로 달라진 주민의 삶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