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훈 “국가와 지자체가 국민의 기본적인 삶 책임져야”
박철환 “면 인구 무너지면 의원·약국·상점도 사라져…기본소득은 지역공동체 최후의 방어선”
지역 소멸 위기 극복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 전환을 논의하는 자리가 9월 17일 전남 강진군에서 마련됐다. 대통령직속 기본사회위원회 강남훈 부위원장과 박철환 농어촌 기본소득 국민연합 상임총장은 강연을 통해 ‘기본사회’의 철학과 이를 실현할 ‘농어촌 기본소득’의 구체적 방법론을 심도 있게 제시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농어촌의 생활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농어촌 기본소득을 단순한 현금성 복지가 아닌 지역경제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정책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농어촌 기본소득 강진군 운동본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강남훈 대통령직속 기본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기본사회의 비전과 철학’을 주제로 강연하고, 국가와 지방정부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기본사회’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박철환 농어촌 기본소득 국민연합 상임총장사무총장은 기본사회의 개념을 농어촌 현실과 연결하며, 인구감소로 생활 기반시설이 무너지고 있는 농촌에서 기본소득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강남훈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사회”
강남훈 부위원장은 기본사회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국가의 핵심적인 책임으로 보는 사회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란 국가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국민의 기본적인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며,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지는 사회를 말합니다.”
이는 소득과 주거, 의료, 돌봄 등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개인의 능력이나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어촌 기본소득 역시 이런 관점에서는 일정 금액을 주민에게 지급하는 개별 복지사업을 넘어선다. 어디에 살든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정부가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사회’ 구상의 지역적 실천 방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구감소가 빠르게 진행되는 농어촌에서는 주민 개인의 소득 문제와 지역사회의 존립 문제가 분리돼 있지 않다는 점이 강조됐다.
사람이 줄어들면 소비가 감소하고 상점과 서비스업이 사라진다. 생활이 불편해지면 다시 사람이 떠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결국 주민 한 사람의 삶을 보장하는 문제가 마을과 지역을 유지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2천~3천명 선 무너지면 생활 기반도 연쇄적으로 붕괴”
박철환 사무총장은 이 문제를 보다 구체적인 농촌 현실과 연결했다.
박 사무총장은 면 단위 인구가 2천~3천명 수준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의원과 약국, 슈퍼마켓, 목욕탕 등 주민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시설과 서비스가 유지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목할 대목은 단순한 인구 숫자가 아니다.
농촌에서 슈퍼 하나가 문을 닫는 것은 도시에서 상점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의미가 다를 수 있다. 대체할 상점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약국과 병원, 식당, 목욕탕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동차를 이용하기 어려운 고령 주민에게 생활시설의 폐업은 곧 일상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구감소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인구 감소 → 소비 감소 → 상점과 생활서비스 폐업 → 생활 불편 증가 → 추가 인구 유출이라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사무총장이 농어촌 기본소득을 지역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으로 보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주느냐’보다 ‘어디에서 쓰이느냐’
이날 강연에서 제시된 또 하나의 핵심은 기본소득의 사용 구조다.
농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더라도 그 돈이 대도시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몰 등 외부로 빠져나간다면 지역경제를 유지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때문에 기본소득을 지역화폐와 결합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지역 내 소비로 이어지도록 설계하는 방안이 강조됐다.
예를 들어 주민에게 지급된 돈이 동네 식당과 미용실, 철물점, 슈퍼마켓 등에서 사용되고, 해당 상인이 다시 지역에서 소비한다면 같은 돈이 지역 안에서 여러 차례 순환할 수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 정책을 주민 개인에게 지급되는 금액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지급된 돈이 지역에서 몇 번이나 돌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라는 지역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본소득이 청년을 농촌으로 불러올 수 있을까
청년의 농촌 정착 가능성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청년에게 농촌 정착의 가장 큰 불안 요인 가운데 하나는 안정적인 소득 기반이다. 농업을 시작하거나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정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초기 정착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만 지급한다고 청년이 농촌으로 이동하거나 정착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주거와 일자리, 교육, 의료, 문화, 교통 등 정주 여건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기본소득의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농어촌 기본소득을 청년 유입 정책과 연결하려면 단순한 현금 지급을 넘어 주거·창업·농업·돌봄 등 지역의 다른 정책과 결합한 종합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국·도비 따오는 사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박 사무총장은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을 단순히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공모사업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통해 지역에서 무엇을 바꿀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화폐를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면 지역의 상점과 서비스업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청년 정착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주민 참여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등을 지역이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우리 지역도 기본소득을 받게 해달라’는 요구를 넘어 ‘기본소득으로 우리 지역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지역 활성화 설계도인 셈이다.
강진에서 기본소득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날 강연은 농어촌 기본소득 논의를 강진의 현실에 대입해 볼 필요성도 남겼다.
기본소득이 실제 지역소멸 대응 정책으로 기능하는지를 판단하려면 지급액이나 수혜 인원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기본소득 시행 전후 읍·면별 인구와 전입·전출, 지역화폐 사용액, 업종별 매출, 폐업·창업 점포 수, 청년 귀농·귀촌과 정착률 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특히 지급된 돈이 강진읍에 집중되는지, 인구가 적은 면 지역의 슈퍼와 식당, 미용실, 철물점 등까지 흘러가는지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강진군 전체의 소비가 증가하더라도 돈이 읍내 일부 상권에 집중된다면 면 단위 생활경제를 지키겠다는 정책 목표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농촌을 살리는 돈’이 되려면
강남훈 부위원장이 제시한 ‘기본사회’가 국가의 역할에 대한 큰 방향이라면, 박철환 사무총장의 발표는 이를 농촌의 구체적인 생존 문제로 연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농어촌 기본소득이 실제 지역소멸을 늦추고 지역경제를 회복시키는지는 정책 시행 이후 데이터로 검증해야 할 문제다.
기본소득을 지급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책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남았는가. 작은 가게가 살아남았는가. 지역에서 돈이 더 많이 돌았는가. 청년이 들어와 정착했는가. 주민의 생활이 실제로 나아졌는가.
농어촌 기본소득이 ‘소멸지역에 돈을 나눠주는 사업’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생활경제를 유지하는 정책이 되려면 앞으로 강진군이 답해야 할 질문들이다.
강연에 앞서 서정대 강진군 운동본부장과 윤영남 강진군의회 의장 등도 농어촌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기본소득이 지역의 구매력을 높이고 소상공인과 일자리, 청년과 고령 주민의 지역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밝혔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기본소득을 할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을 어떤 방식으로 설계해야 강진의 작은 마을과 면 소재지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농어촌 기본소득을 둘러싼 강진의 다음 논의가 주목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