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역축제, 주인은 누구인가? 보라색 꽃밭은 ‘실패’에서 피었다](/_next/image?url=https%3A%2F%2Fcphcgtdyzpfypwzjtkas.supabase.co%2Fstorage%2Fv1%2Fobject%2Fpublic%2Farticle-images%2Farticles%2F1782698767270_el4bci.jpg&w=1920&q=75)
강진 작천 코끼리마늘꽃축제를 처음 기획한 부흥마을 박찬정 씨 — ‘군 주관’이 아니라 ‘마을 주관’, 그리고 ‘화합’이라는 숙제
2026년 6월 · 강진 작천 부흥마을 인터뷰
“왜 수확 안 하세요?” 누가 물으면 그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그냥, 꽃 보려고요.”
전남 강진군 작천면 부흥마을. 300평 밭을 보라색으로 물들인 코끼리마늘꽃은, 사실 ‘잘 키운 농사’가 아니라 ‘제때 거두지 못한 농사’에서 시작됐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작천 코끼리마늘꽃축제 — 그 보랏빛 장관 뒤에는, 박찬정 씨가 4년에 걸쳐 우연과 실패를 더듬어 쌓아 올린 이야기가 있다.
이 글은 그 ‘시작’을 기록하기 위한 인터뷰다.

꽃은 ‘실패’에서 피었다
정작 이 마을 사람들은 코끼리마늘이 뭔지도 몰랐다. “큰 마늘 한번 심어보고 싶다”는 마음만 박찬정 씨에게 남아 있었다.
기회는 엉뚱하게 찾아왔다. 코끼리마늘을 심은 한 후배가 몇 년째 판로를 못 찾고 있었던 것이다. 농작업을 대행해 준 그에게 후배는 “형님, 그냥 가져가세요”라고 했지만, 그는 공짜로는 받을 수 없다며 굳이 값을 치르고 18㎏들이 두 망을 실어 왔다.
그게 100평 밭에 들어간 첫 종자였다.
그런데 심어 놓고도 제때 거두지 못한 해가 있었다. 수확이 늦어진 자리에서, 둥근 보라색 꽃이 하나둘 피어올랐다. 한동안 그는 그게 씨앗인 줄 알고 ‘대박’을 기대하기도 했다.
꽃은 씨앗이 아니었지만, 대신 사람을 불렀다.
“수확을 안 해도, 꽃 보러 오는 사람이 제일 많더라고요.”
거두지 못해 남겨진 300평 꽃밭이, 뜻밖의 풍경이 됐다. ‘수국도 예쁘다지만, 이 꽃은 정말 매력적이더라’고 그는 회고했다. 보라색이라서였다.
마늘꽃 사진을 블로그와 밴드에 올려 알리자, 마을을 찾는 외지인이 늘었다.
그렇게 강진 작천 부흥마을을 찾는 발길이 잦아지면서, 군 행정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보라색 마을’이라는 상상 — 입소문에서 행정까지
박찬정 씨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마침 옆 까치네공원에는 보라색 잉글리시 라벤더를 심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옆 마을이 라벤더라면, 우리 마을은 보라색 마늘꽃 — ‘보라색 마을’이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라벤더가 더해지고, 이웃 한 사람도 자기 밭에 라벤더를 심으면서 동네가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입소문은 사진에서 터졌다. 지나가던 공무원들이 꽃 사진을 찍어 나르고, 그도 문자로 알렸다. 회원이 많은 한 아마추어 사진 동호회가 꽃밭을 찍어 올리자, 시즌마다 사진작가들이 몰려들었다. 행정이 움직인 건 그 다음이었다.
4년 전 1월, 군수가 직접 마을을 찾았다. 사실 그는 그 전에 ‘보여주기’를 한 번 해 둔 터였다. 지금 주차장 자리에 한 달간 좌판을 차려 꽃을 두고 사람을 맞았다. 백만 원 넘게 들였지만 판 것은 얼마 없었다. 애초에 돈을 벌자고 한 일이 아니었다.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싶었어요.”
‘마을’이 주관한 운영방식
이 축제의 진짜 차별점은 꽃 색이 아니라 ‘운영 방식’에 있다. 박찬정 씨가 거듭 강조한 대목이다.
“다른 축제는 군에서 다 차려놓고 ‘와서 해라, 돈은 얼마든 줄게’ 하는 식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군에서는 ‘마을이 직접 해라, 우리는 서포트만 하겠다’는 거였어요.”
군이 무대를 세우고 주민을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이 판을 짜고 행정이 받쳐 주는 방식. 농촌에선 흔치 않은 제안이었다. 실제 운영도 그 원칙 위에 섰다.
꽃밭은 농가의 논밭을 빌려 조성하되, 농사를 지었다면 얻었을 소득만큼을 보장하는 계약으로 묶었다.
농민은 손해 없이 땅을 내주고, 마을은 그 위에 축제를 올린다. 주민주도형 축제의 골격이 그렇게 갖춰졌다.
‘잘 됐다’의 기준 — 소득 아닌 재미와 화합
그렇다면 이 축제는 ‘잘 되고’ 있는 걸까. 박찬정 씨의 잣대는 행정의 그것과 달랐다.
행정이 소득과 방문객 수로 성패를 본다면, 그의 기준은 단순했다.
“마을 사람들이 재밌으면, 그게 기준이에요.”
돈에 대한 생각도 남달랐다. “남기려고 하지 마라, 밑지더라도 베풀라는 거죠. 대신 마을을 알리는 거예요.” 이문을 남기는 대신 운영비만 건지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마을 이름을 새기는 쪽을 택하자는 것이다. 단기 매출보다 공동체의 자산을 키우는 셈법이다.
사실 그가 처음 이 일을 벌인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잘만 하면 마을에서 같이 논의도 하고, 화합도 되고… 그러면 괜찮겠다 싶었어요.” 10년 전 품종을 개발해 보려다 우연히 꽃을 마주한 그 순간부터, 그의 머릿속 목표는 마늘이 아니라 ‘마을’이었다.
그래서 그는 ‘화합’을 유난히 강조했다. “마을 일은 마을 안에서 풀어야지, 밖에 나가서 나쁜 소리를 하면 안 돼요. 부흥마을 이미지가 걸려 있으니까요.”
실제로 지난해엔 사실과 다른 소문에 한 해 내내 시달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지킨 원칙은 한결같았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마을의 흠은 마을 안에서 덮으며, 밖에는 좋은 얼굴을 보이자는 것. 작은 마을일수록 말 한마디가 곧 마을의 평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큰 그림 — 사계절 내내 바쁜 마을
박찬정 씨가 그린 그림은 6월 한 철의 마늘꽃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네 개의 계절 축제를 머릿속에 두고 있었다.
봄에는 유채꽃이다. “길 위에는 코끼리마늘, 길 안쪽 논에는 유채를 심자”는 구상이었다. 4월 유채가 지면 6월 마늘꽃이 그 자리를 잇는다.
여름에는 물놀이다. 지금 주차장으로 쓰는 일대와 지난해 조성한 공원을 헐지 말고 정원으로 가꾸어, 얕은 물놀이장을 열자는 것이다. “미끄럼틀 하나만 놓아도 사람이 와요. 어린이집 체험 예산도 여기서 쓰게 하면 되고요.” 땅에서 나오는 소득 말고 다른 소득이 생긴다는 계산이었다.
가을에는 색깔벼다. 노랑·빨강·검정·파랑 등 빛깔이 있는 벼 품종을 필지별로 나눠 격자무늬로 심고, 그 사이로 길을 내 사람이 걷게 한다. 해 질 녘 산마루로 노을이 넘어가는 자리엔 포토존을 둔다. “올해는 종자를 구해 세 가지 색을 심어 봤어요.” 그렇게 하면 행사가 11월까지 이어진다.
겨울에는 썰매와 스케이트장을 떠올렸지만, 이건 날씨가 받쳐 줘야 하는 일이다. “예전엔 겨울마다 물을 채워 썰매를 태웠는데, 요즘은 강원도도 안 할 만큼 안 추워서요.”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네 계절을 다 채우면 마을은 1년 내내 바빠진다.
그다음 그림은 더 멀리 있었다. “동네 사람들한테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나씩 만들라고 했어요. 누구는 식당, 누구는 공방. 몇 년 안에 마을 전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묶자고요.” 농산물을 팔고 가게를 열어, 꽃밭이 곧 마을의 생계가 되는 그림이었다.
이미 시작된 변화 — “부흥마을에 왔다”
구상이 다 이뤄진 것은 아니다. 화합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마을에서 조금만 같이 발을 맞추면 되는데, 그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그는 이미 일어난 변화를 본다.
무엇보다 마을의 ‘이름’이 달라졌다. 예전엔 부흥마을을 몰라 그냥 지나쳐 옆 동네에 가서야 길을 되묻던 사람들이, 이제는 “부흥마을에 왔다”며 마을 이름을 먼저 부른다. 길가 풍경도 달라졌다. 지나는 길에 연꽃이 보이고, 보라색 꽃이 보인다.
찾아오는 사람도 다양해졌다. “축제 뜬 걸 보고 ‘여기 뭐가 있나’ 하고 오는 사람, 고향이라 서울·대전에서 일부러 오는 사람… 생각보다 정말 여러 데서 오시더라고요.” 크게 붐비진 않아도, ‘부흥마을이 이렇게 예쁜 곳이었냐’는 말을 끌어낸 것 — 그는 그걸 성공이라 불렀다.
남은 숙제 — 주민이 주연, 행정은 스태프
3년을 이어오며 축제는 더 큰 무대로 옮겨 가는 참이다.
올해부터 주최가 작천면으로 넘어가, 행사의 중심이 부흥마을에서 면 단위 까치네공원 쪽으로 이동했다. “잘됐으니까 큰 데로 가는 거죠. 잘 안됐으면 군에서 관심이나 가졌겠어요?” 성공의 결과라는 걸 그도 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면 축제로 가더라도, 주차도 운영도 마을이 쥐고 가야 해요. 그래야 마을 위신이 서죠. 우리 마을이 고생했으니까요.” 규모가 커진다고 마을이 변두리로 밀려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옮겨 가며 남는 아쉬움도 있다.
축제가 열리던 자리는 대부분 개인 땅이라, 이제 원래의 논밭으로 돌아간다. “개인 땅이라 어쩔 수 없죠. 다시 농사를 지어야지요.”
그 길의 열쇠는 ‘돈’이 아니라 ‘역량’이다. 행정이 예산만 쏟고 빠지는 대신, 교육과 견학, 설계 같은 ‘서포트’로 주민이 스스로 굴릴 힘을 키워 줘야 한다.
전문가들이 지역축제의 해법으로 입을 모으는 지점도 같다.
주민이 주연을 맡고, 전문가가 감독을, 지자체는 스태프를 맡는 구조다.
전국 지역축제가 5년 새 32% 늘어 1,170개에 이르고, 그중 상당수가 ‘방문객 수’에만 매달리다 적자 행사로 주저앉는 시대다.
작천의 작은 꽃밭이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묵직하다. 축제의 주인은 행정인가, 마을인가.
그래도, 그는 다시 심는다
무대가 면으로 넘어가도, 박찬정 씨는 자기 자리에 다시 꽃을 심을 생각이다. “처음 시작한 데가 주차장 그쪽이니까, 거기서부터 다시 심어 내려오려고요.” 내 땅 먼저, 그 옆 자투리 땅, 그리고 위쪽 작약밭까지. 작약은 수확하고 남은 꽃송이가 유난히 곱다고 했다. “다 캐지 말고 중간중간 한두 개씩만 일부러 남겨 두자고 하면, 그게 또 그렇게 예뻐요.”
그가 꿈꾸는 건 결국 ‘사시사철 꽃 보는 마을’이다.
주차장 위에는 코끼리마늘, 그 아래엔 수국, 한쪽엔 작약, 또 한쪽엔 보라색 꽃, 산 밑 공원터엔 벤치를 둔 작은 정원 — 머릿속 설계는 이미 또렷하다.
비워 둔 자리에 건물을 올려 그 풍경을 내려다보게 하는 그림도 있다.
공원 조성을 위한 정부 지원 사업(약 3,000만 원 규모)에 기대를 걸어 봤지만, 정작 땅 주인이 팔지 않아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채 미뤄졌다.
“코끼리마늘 마을이라고 마늘만 가득할 필요는 없어요. 6월 한 철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언제 와도 뭔가 꽃이 피어 있는 마을. 그거면 돼요.”
맺으며
보라색 꽃은 사흘이면 진다. 그러나 그 꽃을 함께 피우고, 함께 좌판을 차리고, 번 돈을 어떻게 나눌지 함께 머리를 맞댄 경험은 마을에 남는다. 실패한 농사에서 시작된 꽃밭이 4년 만에 축제가 됐듯, 진짜 수확은 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냈다’는 마을의 기억일지 모른다. 무대가 더 큰 곳으로 옮겨 가는 지금도, 박찬정 씨가 끝내 놓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시작의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