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시선] 기본소득은 군민의 '양보'가 아니라 '권리'다](/_next/image?url=https%3A%2F%2Fcphcgtdyzpfypwzjtkas.supabase.co%2Fstorage%2Fv1%2Fobject%2Fpublic%2Farticle-images%2Farticles%2F1789642466080_11h0w8.jpg&w=1920&q=75)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향한 강진군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촌 지역에서 기본소득이 지역 경제의 선순환과 공동체 유지에 가져올 긍정적 파급효과는 이미 여러 연구와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9월 17일 '농어촌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대통령직속 기본사회위원회 강남훈 부위원장 초청 강연회' 에서 김준철 강진부군수의 환영사를 들으며 다산어보는 적지 않은 유감을 느낀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추진하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소멸의 한가운데 놓인 강진에서 기본소득을 고민하고, 군민 모두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것을 군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이다.
김 부군수는 농어촌 기본소득 공모에 두 차례 탈락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군비 부담을 언급했다. 그리고 향후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여러 복지혜택을 받아온 주민들이 일부를 양보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받는 것을 좀 덜 받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시라.”
“내가 받을 금액에서 일부 좀 양보해서 옆에 있는 내 이웃을 도와달라.”
우리는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본소득은 누군가의 복지를 덜어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제도인가.
기본소득의 출발점은 ‘양보’가 아니라 ‘보편성’이다
기본소득의 핵심적인 특징은 소득이나 재산, 노동 여부 등을 조건으로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한다는 데 있다.
물론 현실의 기본소득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 모든 기존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재원을 무한정 추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적인 접근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기존 복지를 받고 있는 사람이 왜 그 지원을 받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장애 때문에 추가 비용이 필요한 주민, 돌봄이 필요한 주민,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민, 특정한 사회적 위험 때문에 지원받는 주민에게 지급되는 복지는 단순한 ‘혜택’이나 ‘더 받는 몫’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각자의 다른 필요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다.
그런 지원을 기본소득 재원 마련을 위해 조정하려 한다면 행정이 먼저 설명해야 한다.
누구의 어떤 지원을 얼마나 조정할 것인지, 그 사람이 기본소득을 받은 뒤에도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기존 지원이 줄어 오히려 실질적인 혜택이 감소하는 주민은 없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런 설명 없이 먼저 군민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순서가 뒤바뀌었다.
왜 주민의 복지부터 ‘양보’의 대상으로 이야기하는가
더 근본적인 질문도 있다.
강진군에는 수많은 예산사업이 있다.
행사도 있고 축제도 있다. 각종 시설사업과 개발사업, 민간보조사업, 홍보비와 경상경비도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강진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했다면 행정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군민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강진군의 전체 예산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무엇을 줄일 수 있는가.
무엇을 미룰 수 있는가.
효과가 낮은 사업은 없는가.
관행적으로 반복해온 사업은 없는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검토하고도 부족하다면 그때 군민에게 설명하고 사회적 합의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기존에 받던 것을 일부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주민들은 당연히 묻게 된다.
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면서 가장 먼저 주민이 받고 있는 복지가 거론되는가.
‘양보하지 않으면 공모가 어렵다’는 설명도 우려스럽다
김 부군수는 군민들의 배려와 양보가 없다면 기본소득 추진이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기본소득 정책의 재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우선적으로 행정과 의회가 책임져야 할 정책 결정의 영역이다.
어떤 사업을 줄이고 어떤 사업을 유지할 것인지, 제한된 재정을 어디에 우선 배분할 것인지는 주민 개개인의 선의에 맡길 일이 아니다.
그것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행정이 해야 할 선택을 주민에게 ‘양보와 배려’라는 도덕적 언어로 요청하기 시작하면 자칫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기존 지원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주민이 마치 공동체를 위해 양보하지 않는 사람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필요 때문에 지원을 받고 있는 주민에게 그런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공동체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더욱 묻는다
김 부군수 발언 가운데 공감할 부분도 있다.
자녀들이 도시로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은 농촌에서 돌봄과 생존의 책임을 가족에게만 맡길 수 없으며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동체는 어려운 사람이 자신의 몫을 조금 내려놓는 데서 시작되는 것만은 아니다.
공동체는 가장 어려운 사람의 삶을 먼저 지키면서 모두의 기본적인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다산어보가 이번 발언에 유감을 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추진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추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추진하려면 군민에게 “양보해 달라”고 말하기 전에 행정이 먼저 자신의 예산을 들여다봐야 한다.
강진군에 묻는다
강진군이 정말 농어촌 기본소득을 추진하려 한다면 이제 추상적인 ‘양보’가 아니라 숫자로 답해야 한다.
기본소득 시행을 위해 필요한 정확한 군비는 얼마인가.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조정하려는 기존 사업은 무엇인가.
그 가운데 주민 복지사업은 무엇이며 현재 몇 명이 혜택을 받고 있는가.
복지사업을 조정했을 때 기본소득을 포함한 주민 개인의 실제 소득은 얼마나 늘거나 줄어드는가.
그리고 주민 복지를 조정하기에 앞서 축제·행사·시설·개발·민간보조·경상경비 등 다른 예산은 얼마나 검토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 없이 ‘양보와 배려’를 먼저 말해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은 어려운 주민에게 자신의 몫을 양보하라고 설득하는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누구도 기본적인 삶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 기본소득 논의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강진군이 농어촌 기본소득을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다면 군민에게 양보를 요구하기 전에 행정이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부터 보여주기 바란다.
그것이 강진군민에게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행정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다산어보 편집국
<김준철 부군수 환영사 녹취본>
"아, 제가 부군수로 와서 가장 무거운 과제에 지금 직면한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 강진군이 '강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군민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산 것이 609년입니다. 조선 태종 때 강진이라는 이름이 생긴 이래 609년 동안 지났습니다.
저는 오늘 이 농어촌 기본소득에 대해서 여러분들께 간곡하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두 차례에 걸쳐서 공모에 신청했지만 탈락했습니다. 탈락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이 공모의 심사 과정에서 우리가 제출해야 될 자료를 못 냈습니다. 그게 뭐냐면은 잔액 증명서.
우리가 15만 원이라는 돈을 군민들한테 나눠드리려고 하려면은 군비가 171억이 필요합니다.
20만 원을 나눠드리려고 하면은 361억 원이 필요합니다.
이 부담액을 증명하는 잔고 증명을 해야 되는데 이것을 못 했습니다. 왜 그러냐면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예산서에 나열된 모든 사업을 싹 조정을 해야 됩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이것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두 번에 걸쳐서 공모에는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내년에 시작되는 공모에 신청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은 여기 강진군에 살고 계신 모든 군민들이 공동체를 유지하겠다는 배려, 나눔 두 가지가 없으면 어렵습니다.
기존에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받으셨던 분들이 절대적인 비용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대신 이 농어촌 기본소득이 됨으로써 180만 원이나 240만 원이 추가로 들어올 건데, 이걸 군 재정으로는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받고 있었던 것을 일부 조정을 해서 아무것도 받지 못했던 분들한테 일부를 나눠드릴 수 있는 우리 군민들의 양보와 배려가 없으면 어렵습니다.
저는 군민 여러분들께 기본소득을 실현하는데 강진군하고 강진군의회가 열심히 노력하겠으니, 강진군민 여러분께서는 받는 것을 좀 덜 받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시라.
'내 이웃이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으니까 내가 받을 금액에서 일부 좀 양보해서 옆에 있는 내 이웃을 도와달라' 이런 양해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렇다고 그러면 내년에 공모에 분명하게 우리가 선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왜 이 기본소득이 필요하냐. 과거에는 우리 자식들이 내가 살고 있는 동네 혹은 같은 집에서 살아서 부양을 했습니다.
지금은 자식들이 다 떠나고 없습니다. 어르신들만 남아있습니다. 이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지역사회에서 여러분들을 보살필 수 있는 것은 우리 지역사회 공동체 전체가 부담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기본소득 사회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여러분들의 양보만 해주신다면 저희들이 열심히 뛰어서 꼭 선정되도록 하겠습니다. 군민 여러분들께서 다소 바라는 대로 안 되시더라도, 좀 양보해야 될 어떤 그런 상황이 오시더라도 여러분들께서 배려와 양보, 그다음에 나눔의 정신을 가지고 꼭 양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