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재 한양대 겸임교수 주제발표
“기후·돌봄·지역소멸 위기, 주민 관계와 공동체 역량에서 해법 찾아야”
기후위기와 지역소멸, 돌봄 공백, 사회적 고립 등 여러 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마을공동체가 주민의 일상과 지역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기 마을공동체 가치 확산과 현장 밀착형 정책 연구 포럼’은 9월 15일 오전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에서 발족 기념행사를 열고, 경기지역 마을공동체의 가치와 현장 중심 정책의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이영재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시민사회학과 겸임교수는 ‘복합위기 시대, 마을이 답이다!’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인구감소와 고령화, 기후재난, 지역경제 침체, 돌봄 공백과 주민 관계망 약화가 각각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복합위기라고 진단했다. 행정이 문제를 분야별 정책으로 나눠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주민이 생활 현장에서 겪는 복합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복합위기에 대응하려면 단기적인 개별 사업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이 서로 연결되고 지역의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지역 5개 현장에서 전한 ‘마을의 목소리’
이날 포럼은 전문가 발표에 앞서 경기지역 마을활동가들이 현장의 경험을 직접 전하는 ‘마을발언’으로 시작됐다.
마을발언에는 금미선 경기시군마을공동체네트워크 대표, 우인혜 마을활동가기금 경기추진단 ‘마을뜰’ 공동단장, 이예진 스무살이협동조합 이사장, 최재박 갓생포천 대표, 이경남 수원마을만들기네트워크 운영위원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화성, 시흥, 의정부, 포천, 수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 활동과 현장의 과제를 소개했다.
지역과 활동 분야는 달랐지만 주민의 자발적인 활동을 뒷받침할 안정적인 지원체계, 활동가의 지속가능성, 행정과 주민 사이의 협력,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마을공동체 정책이 일회성 행사나 단기 공모사업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현장에서 축적된 주민 관계와 활동 경험이 지역의 장기적인 자산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때 작동하는 것은 가까운 이웃의 관계망”
이영재 교수는 마을공동체를 단순한 친목모임이나 취미활동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평소 형성된 주민 관계는 재난이나 감염병, 돌봄 위기가 발생했을 때 주민의 생활을 살피고 정보를 공유하며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는 사회적 기반이 될 수 있다.
마을 안에서 누가 혼자 살고 있는지, 어느 가정에 돌봄이 필요한지, 이동이나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주민이 누구인지 가장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가까운 이웃이다.
행정의 통계와 제도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주민의 생활 문제를 공동체의 관계망이 발견하고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마을을 행정서비스가 최종적으로 전달되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 생활 문제를 발견하고 해법을 만들어가는 정책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 수와 참여 인원만으로 공동체 평가해서는 안 돼
마을공동체 활동의 성과를 행사 개최 횟수나 참여 인원, 예산 집행률과 같은 단기적인 수치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주민 사이에 신뢰가 형성됐는지, 새로운 주민이 참여할 통로가 만들어졌는지, 주민이 지역의 문제를 직접 논의하고 해결할 역량을 갖추게 됐는지가 더욱 중요한 성과라는 것이다.
공동체 활동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빠르게 만들어내기보다 주민이 만나고 갈등을 조정하며 신뢰를 쌓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행정의 지원사업은 대부분 1년 단위로 운영되고, 정해진 기간 안에 가시적인 결과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사업계획과 정산에 매달리거나 활동가가 소진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공모사업 종료와 함께 사라지는 공동체
이 교수는 기존 마을공동체 정책이 단기 공모사업과 보조금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는 점을 짚었다.
행정이 정한 사업 목적과 일정, 예산 항목에 주민활동을 맞추는 구조에서는 공동체의 자율성과 지속가능성이 약해질 수 있다.
지원 기간에는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지만 사업이 끝난 뒤 모임과 활동이 함께 중단되는 사례도 나타난다. 주민이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활동보다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쉬운 사업을 선택하게 되는 문제도 있다.
마을마다 인구구조와 주민 관계, 생활환경과 지역 과제가 다른데도 동일한 기준과 성과지표를 적용하면 지역의 다양성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
마을공동체가 주민 자치조직이 아니라 행정사업을 수행하는 하위 조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별 사업 지원에서 공동체 생태계 조성으로
이 교수는 마을공동체 정책이 개별 사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수준을 넘어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지역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과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인력, 중간지원조직, 주민교육과 상담, 공동체 간 교류, 행정과의 협력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지원조직도 공모사업 접수와 회계 정산을 관리하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주민의 언어와 행정의 언어를 연결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는 동반자 역할이 필요하다.
경험을 쌓은 마을활동가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됐다. 활동가가 소진돼 현장을 떠나면 개인의 경험뿐 아니라 지역에 축적된 주민 관계와 공동체의 역사도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이나 지방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뀔 때마다 지원체계가 흔들리는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 공동체 형성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 만큼 정책의 연속성과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장 활동가·지원조직·도의회가 정책 방향 토론
주제발표 이후에는 경기지역 마을공동체 정책의 과제와 포럼의 역할을 논의하는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는 송현종 경기마을지원센터협의회 대표, 정한철 화성시민에너지협동조합 사무국장, 이진경 우리동네연구소 퍼즐조합 이사장, 오현정 경기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 의원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현장 활동이 행정의 사업 단위에 맞춰지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하며, 주민과 활동가의 경험이 실제 정책 수립 과정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지역마다 다른 공동체 환경을 고려한 정책 설계, 마을활동가와 중간지원조직의 안정성, 단기적인 양적 성과를 넘어선 평가체계가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주민에게 국가 책임 떠넘겨서는 안 돼”
‘마을이 답’이라는 주장이 국가와 지방정부의 책임을 주민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돌봄과 복지, 안전, 기후위기 대응은 기본적으로 공공이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주민의 자발성과 헌신을 값싼 행정서비스처럼 활용하거나 제도적 공백을 공동체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마을공동체 정책의 목적은 행정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지역 문제의 논의와 결정, 실행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의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데 있다.
복합위기 시대에 마을이 답이라는 말은 모든 문제를 마을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고, 생활 속 문제를 함께 논의하며, 행정과 협력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기초 체력을 키우자는 제안에 가깝다.
현장 경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포럼 될까
이번 포럼은 오현정 경기도의원이 회장을 맡았으며, 경기도마을정책추진단, 경기시군마을공동체네트워크, 마을만들기경기네트워크, 경기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했다.
사회는 안은현 평택마을네트워크 담소 대표가 맡았다.
포럼이 앞으로 경기지역 마을공동체 활동가와 주민, 연구자, 지방의원, 행정 담당자가 지속적으로 만나는 정책 논의의 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과제로 남는다.
마을 현장에서 쌓인 경험을 단순한 사례 발표에 그치지 않고 정책 개선안으로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마을공동체의 성과를 주민 관계와 자치 역량, 지역의 위기 대응력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하는 것이 포럼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행사 개요
행사명: 경기 마을공동체 가치 확산과 현장 밀착형 정책 연구 포럼 발족 기념행사
주제: 복합위기 시대, 마을이 답이다!
일시: 2026년 9월 15일 오전 10시
장소: 경기도의회 대회의실
포럼 회장: 오현정 경기도의원
주제발표: 이영재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시민사회학과 겸임교수
사회: 안은현 평택마을네트워크 담소 대표
주관: 경기도마을정책추진단, 경기시군마을공동체네트워크, 마을만들기경기네트워크, 경기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