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하면 수백억, 지키면 빈손?"… '단위학교 완결주의' 깬 9가지 혁신안
[국회토론회 발제 심화] 이종수 이사장·하정호 운영위원 기조 발제 분석
비용 논리 앞세운 44년 통폐합 잔혹사… "학교 없애지 말고 행정·자원 재배치해야"
교육부가 내놓은 '교육혁신선도지역' 사업의 핵심 설계는 교육의 질 제고가 아닌, 사실상 재정을 미끼로 한 학교 감축에 불과하다는 전문가들의 심층 분석이 제기됐다. 발제자들은 과거 44년간 반복되어 온 '통합의 쳇바퀴'를 끊어내기 위해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을 없애는 대신 교육과 행정 시스템을 분산·연계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주문했다.
◇ 이종수 "통합 강제 안 한다면서 수백억 미끼… 지자체 줄 세우기"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종수 남해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이사장은 교육부 정책이 지닌 재정 유인 구조의 폭력성을 고발했다.
교육부는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학교 규모 기준과 통합 절차를 정하도록 권한을 이양하고 기존 학부모 과반 동의 기준을 폐지했다고 밝혔지만, 실상은 통폐합 인센티브를 50% 이상 상향했다. 본교 폐지 시 초등학교 75억 원, 중·고등학교 130억 원을 지원하며, 3개교를 1개교로 묶을 경우 기숙사, 학교복합시설, 폐교 활용 지원 등을 합쳐 최대 약 4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이 거점학교로 쏠리게 된다.
이 이사장은 "재정 여건이 극히 열악한 농어촌 지자체와 교육청 입장에서, 한쪽 선택(통폐합)에는 수백억 원이 쏟아지고 다른 선택(학교 유지)에는 지원이 없다면 이것은 온전한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학교 폐쇄를 유도하는 구조"라고 직격했다.
그는 경남 남해 상주면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폐교 위기에 몰렸던 상주중학교가 대안교육 특성화중으로 전환하고 마을 주민과 함께 '동고동락협동조합'을 꾸려 상상놀이터, 다랑논 생태교육, 마을책방 등을 운영한 결과, 10여 년간 300명 이상의 학부모와 청년이 이주해 폐교 걱정 없는 마을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학교가 사라지면 아이를 키울 정주 여건이 파괴돼 마을 전체가 소멸한다"며 "'통합하면 지원'하는 정책을 '혁신하면 지원'하는 정책으로 즉각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하정호 "학생 1인당 운영비 지표는 함정… '단위학교 완결주의' 해체해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하정호 전남광주교육자치운동연대 운영위원은 1982년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 이후 5,600여 개 학교가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소규모 학교 문제가 심화하는 원인을 이론적으로 해부했다.
하 위원은 교육부가 통폐합의 주된 근거로 삼는 '학생 1인당 높은 운영비'에 대해 "학교 운영비는 학생 수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고정비(시설유지비, 기본 인건비 등)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계산 방식상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착시"라고 반박했다. 또한 "교육부 장부상으로는 인건비와 운영비가 절감된 것처럼 보이지만, 학교가 사라진 뒤 농촌 황폐화, 도시 학교 신설 비용, 장거리 통학 인프라 구축 등 국가 전체로 전가되는 거대한 사회적 비용은 회계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통폐합 논리의 밑바탕에 '단위학교 완결주의(하나의 학교가 교장, 행정실, 교육과정, 시설 등 모든 기능을 스스로 완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학교를 국가의 배타적 소유인 '공공재'로만 보고 효율적 배분의 대상으로 취급하다 보니 "학생이 줄면 폐교밖에 답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하 위원은 유네스코(UNESCO)와 네그리(Negri)의 이론을 빌려 학교를 주민과 지역이 함께 만들고 책임지는 '공통재(Commons)'이자 '공공학습 플랫폼'으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단위학교 완결주의를 허물고 법 개정 없이도 실현 가능한 '9가지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인접 2~4개 학교가 회계·인사·시설 관리를 통합하는 「공동학교행정실」 신설 ▲학교의 법적 독립성을 유지하되 교육과정과 교원을 공유하는 독일식 「학교연합」 지위 신설 ▲순회 교원과 코디네이터를 지원하는 「권역 교육지원 인력풀」 ▲지역 농부·예술인·전문가가 정규 수업을 맡을 수 있도록 하는 「산학겸임교사·명예교사제」 활성화 ▲경남 공동학교 모델을 정례화하는 「연합 학급·연합 활동」 ▲학교 규모 기준을 '재적 학생 수'에서 마을 학습자를 포함하는 '학습자 수'로 전환 ▲읍·면 단위 「지역교육경관계획」 수립 ▲통합과 비통합에 대칭적 지원을 보장하는 「재정 인센티브 구조 대칭화」 ▲통폐합 전 대안 검토를 의무화하는 「절차적 안전판 조례화」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