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터널 선샤인: 그을린 사랑, 헤어질 결심 –
김선아 (경기국제SDGs영화제 페스티벌 디렉터 )
사랑이 끝난다는 건 감정이 사라진다는 뜻일까? 차마 미뤄두었던 영화 <이터널 선샤인>.
조엘(짐 캐리)이 기억을 지우려 한 건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온 어쩔 수 없는 고통 때문이었지만, 고통의 근원 또한 사랑이었다. 반드시 지워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기계 장치는 기억을 거꾸로 더듬어 가며 삭제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이 오히려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더 선명하게 붙든다. 뇌가 삭제를 명령받는 순간, 필사적으로 더 붙잡아 기억에 남기려 한다. 사랑은 더 이상 불필요하고 거슬리는 감정의 잔향이 아니라, 생존의 본능이 된다.
조엘이 기억 속을 떠돌며 그녀를 잃는 장면들은 꿈의 붕괴로 표현된다. 사랑하던 연인과 함께한 시간과 공간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처음 둘이 만났던 바다는 어느덧 아스팔트로 변하고 함께했던 얼굴들이 사라져 간다. 그녀와 누웠던 침대는 또 다시 바다로 향하고 그의 기억들은 뒤죽박죽이 되어 끝내 사라진다.
잊혀짐의 끝자락을 기어이 붙들고 싶었던 것은 후회다. 망가진 관계에 대한 후회. 사랑의 빛은 영원히 반짝이는 햇살이 아니었음을. 사랑의 근본이었던 둘의 첫 만남이 마침내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인간 세상의 근원적인 저주를, 그와 그녀는 결국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서래(탕웨이)가 모래 속에 몸을 묻을 때, 바다는 가차없이 순식간에 흔적을 지운다. 모래 위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지만, 짜디짠 바다의 비린 내, 얼굴을 때리는 거친 파도거품, 끝없이 이어지는 머나먼 석양을 넘실거리는 푸른바다, 망연자실한 남자의 상실감은 해준(박해일)의 오감으로 뚜렷이 남는다.
잊지 못한다. 사랑의 잔해 위에 버티고 서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남겨진 흔적들을 샅샅이 더듬어 봐도 남은 것은 오로지 홀로 남겨진 자신뿐이다.
사랑은 끝난다.
완전한 이별은 없다. 흔적과 잔해는 삭제된 기억의 틈에서 다시 처음으로 그녀를 만나고, 해준은 바다의 심연에서 영원히 허우적 댈 것이다. 하나는 기억 속에서, 또 하나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란 사라진 후에도 남는 감각이라는 진실 앞에서 영원히 고독하고 고통스럽다.
사랑이 잔혹한 것은 망각으로부터 구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워도 파묻어도 기억의 미로는 한낮의 사랑을 불완전하게 반복한다. 아무리 헤어질 결심을 한다 해도 마지막까지 불타오를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끝내 한 줌의 재조차 되지 못하고 한낱 그을린 사랑으로 잔존한다는 비극은, 인간을 버티고 선 사랑의 승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