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없다: 박찬욱의 영화 세계, 혐오함에도 끝내 매료되는 생의 우아함-
김선아 (경기국제SDGs영화제페스티벌 디렉터)
2025년 추석 즈음에 맞춰 문화계와 세간에 큰 화제가 된 박찬욱 감독의 최근작 <어쩔수가없다>.
선택하고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피로와 본능적 폭력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다. 경쟁과 생존, 피와 피없는 복수가 필연적으로 강요되는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유해한 타자를 없애버리고 싶거나 그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
박찬욱은 부조리한 체제 속의 금지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나 체제의 본질이라고 말하듯, 그의 화법은 파괴 본능으로 인해 초래된 자기 파멸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은 이미 그 정서를 완벽히 예고했다. 억압된 사회와 체제 속에서 인간이 서로를 찢고 복수하며 살아가는 비극의 구조 말이다. <박쥐>에서는 숭고한 신앙과 더럽혀진 인간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중성을 인정하고, <아가씨>에서는 위선적인 권력과 철저히 성적인 지배 구조를 조롱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사회적 위선을 해체하는 서사로 뒤틀리고 고립된 질서에 정면으로 맞선다. 박찬욱의 세계는 언제나 체제와 도덕, 욕망의 틀을 교묘히 비틀어 쥐어짠다. 단 한방울도 남김없이 짜내고 싶은 그의 결연하고도 비상한 의지가 선연하다.
2025년 작 <어쩔수가없다>에서 그는 이제는 더 이상 어쩔수가없이 1~2m공중에 부유할 수 밖에 없던 예술이라는 형상을 완전히 땅바닥에 붙여버린다. 주인공 만수(이병헌 분)는 본의아니게 현실질서에 철저히 복종하며, 그 복종의 끝에서 자신을 끝내 해고해 자신의 자존감이자 존재의 완성으로 표상되는 가족까지 망가뜨린 '대자본의 논리'와 똑같이, 이 모든 과정과 결과는 "어쩔수가없다"고 스스로를 세뇌한다. 실직과 빈곤, 파멸의 벼랑에 놓인 자신과 똑같은 처지인 타인을 살인하는 중에도 역설적으로 그는, 숭고한 가족애를 위해 살인을 계획하고 살인할 상대방에게 바람난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살인하기 직전에조차 끝내 숨겨주려 한다. 만수는 절대로 권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무릎 꿇고, 그 복종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한다.
<칠수와 만수>(1988/ 박광수 감독)에서 해직 노동자 출신인 '만수'와 미군부대 앞에서 일하는 칠수가 서울 중심 고층빌딩에서 유리창을 닦다가 술김에 깡통을 내던져 빌딩아래 주차된 고급 검정세단 자동차들을 부숴 마치 공개적으로 체제에 반항하는 인물로 여겨져 끝내 투신에까지 이르게 된다. 극 중 만수의 아버지는 정치범이었으며, 그는 연좌제로 제대로 된 직장도 가지지 못하는 신세였다. 마찬가지로 2025년의 '만수'아버지는 베트남 참전용사로서 승리의 기념품으로 북한제 권총을 액자에 박제한 승리자였으나, 이후 손수기른 2만마리의 돼지를 구제역 때문에 자신의 땅에 산 채로 묻어야 했고 끝내 이를 못견뎌 패배자로서 가족을 버리고 스스로 목매 숨진 인물이다. 만수의 권총연쇄살인은 아마도 패배를 인정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피하고 싶었던 일종의 투사였을지도 모른다. 1988의 만수와 2025의 만수가 의도적인 오마주를 통해 겹쳐져 보인다.
그의 최근작 <동조자>(2024, HBO시리즈, A24 제작)는 박찬욱의 사회역사의식을 전면으로 보여준다. 베트남계 어머니와 프랑스계 아버지를 둔 주인공 '대위'는 남베트남에 잠입한 북베트남 공산당 스파이다. 베트남인 얼굴을 하고 있으나, 푸른 눈을 가졌다. 그는 혼혈이라는 결함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베트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여러모로 재능있고 탁월한 인물이다.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혁명적인 의식을 가지려 노력하나 결국은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이며 풍요로운 자본주의 취향임은 감출 수 없다. 대위와 가까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동양인에 대해 너그럽고 관심있는 인물처럼 나오나 결국은 철저한 인종혐오, 백인우월주의자다. "Love it or leave it!"이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은 자본주의에 철저히 굴종하지 않으려면 목숨을 걸고 네나라로 다시 떠나라!며 협박한다. 모순이 가득한 베트남의 정치적 상황, 극단적인 민족 분단과 분열, 타국에서 정체성을 억압당하며 살아가야하는 난민이라는 존재들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하고 분노하며 죄의식에 시달려 자학하는 개인들. 그의 인장이 찍힌 미학적 성취는 그가 메가폰을 잡은 3편까지 응축되어 나타난다.
<어쩔수가없다> 속, '남자로서 가족을 지킨다', '고추화분', '노동하는 남성' 등의 장치들이 결코 단순히 남성우월적인 개념을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인물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아니라, 그 남성이라는 체제를 조롱하고 이용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순응하면서도 한편 비웃고, 감정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냉정하게 판단한다. 심지어 자신의 손으로 해고되어 무능해지고 망가진 50대 남편을 죽이고 이미 몰래 집으로까지 들여온 20대 불륜남과 살며 화려한 유희를 즐긴다.
영화 속 공간은 그의 건축가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재능과 관심, 탁월한 안목으로 위대한 공간들을 창조해낸다. 인간의 공간이란 어떤 모습들인가, 인간에게 공간이란 무엇인가(여기서 '인간'을 '인물'로 고쳐보아도 좋다)를 섬세하게 연출한다. 그의 모든 영화 속 공간은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이상적이기도 하다. 마치 꿈 속처럼 표현된다. 그의 영화에서 보는 건축적인 미학은 빼놓지 못할 만큼 탁월하다.
박찬욱은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 온갖 부조리와 해체적인 장면 속에서 혹자는 '세상이 싫어요? 인간들도 싫어요?'라는 질문을 그에게 던지지만 오히려 그는 영화를 통해 그들을 원통하도록 애처로워 한다.
그의 인간애가 비장하도록 아름답다. 그의 영화 속 미장센들처럼 말이다. 처연한 그의 우아함에 매료됨은 당연한 귀결이다.
만수의 이야기는 단지 '제3자'의 소설이 아니다. 만수는 나, 너, 우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