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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는 언제부터 질문을 멈추었나"···AI 시대, '답'만 남은 사회

마을리포터 윤여진
2026년 4월 23일 AM 11:55
"우리는 언제부터 질문을 멈추었나"···AI 시대, '답'만 남은 사회
"우리는 언제부터 질문을 멈추었나"···AI 시대, '답'만 남은 사회 관련 자료 사진. ⓒ 다산어보

우리는 살면서 명확한 정답을 찾지 못할 때 큰 불안을 느끼지만, 작가는 그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 상태'이다." - 2017년 JTBC 뉴스룸 《바깥은 여름》 인터뷰

일상의 슬픔을 명랑한 문장으로 꿰뚫는 한국 문학의 천재 소설가 평가되는 김애란 작가의 과거 인터뷰를 읽다가 이 문장 앞에서 한참 멈춰 섰다. 우리는 흔히 정답을 찾지 못할 때 불안을 느낀다. 하지만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질문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는 질문보다 답을 먼저 만난다. 검색창에 몇 개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정제된 문장이 곧바로 화면을 채운다. 링크를 눌러 원문을 확인하거나 긴 글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사고는 그다음의 일로 밀려난다. 이 변화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를 얻는 방식을 넘어, 우리의 사고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며 정보 습득과 소통 방식이 달라졌다고 말한 지 30여 년. 이제 우리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전환점 앞에 서 있다.

​ 검색은 사라지고, 결과만 도착하는 시대

생성형 AI 기반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제로 클릭(Zero-click)’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사용자는 더 이상 뉴스 기사나 지식의 원천을 직접 찾아 나서지 않는다. AI가 요약해 준 결과만 확인한 채 창을 닫는다. 정보는 이제 탐색의 대상이 아니라, 즉석에서 소비되는 결과물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더 많이 읽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덜 이해하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진짜 배움은 질문의 연속 속에서 일어난다. 하나의 기사를 읽다 보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기고, 서로 다른 관점을 비교하면서 “왜 이런 결론에 이르렀을까”를 스스로 묻게 된다. 그러나 AI의 압축된 요약은 이런 맥락과 충돌을 지워버린다. 그 자리에 매끄럽게 정리된 하나의 답만 남는다.

**질문이 필요 없는 환경, 그 투명한 감옥 ** AI는 질문을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이 필요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환경을 정교하게 만든다. 플랫폼은 더 빠르고 더 정확한 답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답이 빨라질수록 사용자의 판단 근거는 오히려 얕아질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나태함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플랫폼의 구조 자체가 질문의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수용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적화된 결과값만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필터 버블’ 속에서, 우리는 타자의 관점과 마주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획정해둔 선택지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 뿐이다.

​벽이 보이지 않기에 탈출조차 꿈꿀 수 없는 곳. 그런 의미에서 이 시스템은 거대한 ‘투명한 감옥’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마침내, 무엇을 더 물어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린 무력한 존재가 되어간다.

다시 정의되어야 할 디지털 시민권, 질문할 권리

질문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책임의 소재마저 흐릿해진다. 정보의 출처와 생성 과정을 따져 묻지 않는 토양은 AI의 환각(Hallucination), 왜곡된 정보, 편향된 판단이 독초처럼 뿌리 내리기 가장 좋은 환경이 된다. 비판적 검증이 생략된 정답은 권위가 되고, 그 뒤에 숨은 오류는 책임지지 않는 유령이 된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시민권의 정의를 새롭게 확장해야 한다. 지금까지가 정보에 대한 '접근'과 '보호'의 시대였다면, AI 시대의 핵심은 '질문할 권리'의 수호에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이 답을 보게 되었는지 알 권리 AI가 내놓은 결과의 근거와 출처를 확인할 권리 특정 답변으로 유도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권리 이러한 조건들이 권리로서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술이 제공하는 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소비하는 '수동적 종속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AI 시대, 글 쓰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이 모든 고민의 끝에는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직접 써야 하는가.

"문장을 쓰는 일은 내 무지를 발견하고, 그 결핍을 문장으로 채워가는 노동입니다." - 김애란 작가 [손석희의 질문들4 인터뷰 중에서

이 문장은 AI 시대의 글쓰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AI는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조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자각하며 질문을 밀고 나가지는 못한다.

반면 인간은 문장을 써 내려가며 비로소 자신의 무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시 질문한다. 빠른 정답은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는 있어도, 그 과정에서만 가능한 발명과 성찰의 기쁨까지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AI 시대에 글 쓰는 인간이 살아남는 법은 어쩌면 역설적이다. 가장 효율적인 답으로 곧장 향하지 않는 일, 답보다 질문을 붙드는 일, 결과보다 과정의 고통을 견디는 일, 매끄러운 요약보다 울퉁불퉁한 맥락을 끝내 바라보는 일. 인간의 사유와 글쓰기는 바로 거기서 다시 시작된다.

우리가 스스로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질문을 문장으로 옮기는 수고를 멈추지 않는다면, 디지털의 파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게 도착한 편리한 답을 잠시 밀어두고 나만의 질문을 시작하겠다는 가장 능동적인 선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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